카테고리 없음 / / 2023. 4. 16. 09:06

치의학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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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마취 수술

과거 치의학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Joshep Priestley)는 최초로 이산화질소(N2O)를 발견했다. 화학자인 그는 다른 수십 가지 기체들을 포함한 이산화질소를 발견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정제가 되지 않아 독성이라고 여겼다. 이후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에 의해 이산화질소에 대해 밝혀졌다. 그는 직접 이산화질소를 흡입하며 실험했고, 이산화질소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랬기에 이산화질소는 이유 없이 웃게 된다고 하여 웃음가스라 불렸다. 웃음가스에 대해 알려지자 이산화질소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산화질소는 단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에 반면 험프리 데이비는 이산화질소가 사람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는 사실을 책에 기록했었다.

 

 이후 40여 년 동안 이산화질소는 웃음가스로 사용이 되었다. 그러던 중 1844년 미국에서 이산화질소를 이용한 웃음가스 쇼가 열렸는데, 쇼맨은 청중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웃음가스를 마시게 했었다. 지원자는 웃음가스를 마신 후 웃으며 관중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의자에 부딪혀 다리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했었다. 이 지원자를 지켜본 미국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는 웃음가스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이산화질소를 발치에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레이스 웰스는 다른 치과의사를 불러 자신이 이산화질소를 들이마신 후 사랑니를 뽑아달라고 했는데, 통증을 느끼지 못했었다. 이에 그는 이산화질소가 마취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하버드 메디컬스쿨에서 공개 실험을 했었다. 강연을 한 뒤 지원자를 받아 이산화질소를 들이마시게 한 뒤 이를 뽑았는데 지원자는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 마취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던 것인데, 그 당시에는 이를 몰랐기에 사람들은 호레이스 웰스를 사기꾼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이로 인해 호레이스 웰스는 운영하던 병원을 폐업하게 된다.

 

 그 후에 호레이스 웰스는 유럽으로 가서 자신이 발견한 마취제에 관한 발표를 하기도 했고,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실험과 증언을 모아 책을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마취제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가 연구하던 다른 마취제인 클로로폼(Chloroform)에 중독된다. 이로 인해 그는 환각 상태에서 행인에게 황산을 뿌린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고, 결국 중독현상으로 인해 손목을 그어 감옥에서 자살함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호레이스 웰스의 제자 윌리엄 모턴(William Thomas Green Morton)은 에테르 가스의 마취효과를 공개적으로 시연했고, 마취와 수술에 성공하게 된다. 호레이스 웰스의 공개 시연이 실패했었기에 마취의 발견에 대한 공로는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미국치과의사협회와 미국의사협회는 호레이스 웰스를 최초의 마취제의 발견자로 공식 발표했다.

치과 드릴

 핸드피스(Handpiece) 또는 치과 드릴은 사람들이 치과를 무서워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만큼 인체의 가장 단단한 조직인 치아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깎기 위해 강력한 회전력과 빠른 회전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발굴된 9000여 년 전 유골에는 드릴을 사용하여 치료를 받은 흔적이 있다. 치통을 치료하기 위해 썩은 치아 부위를 부싯돌로 제거를 한 것이다. 손으로 드릴을 돌려 치아를 깎거나 구멍을 뚫어 치료하는 방법은 현대까지도 내려온다.

 

 기계를 이용한 동력전달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활이나 크랭크를 이용해 손으로 돌리는 것보다 빠른 드릴이 발명되었다. 1790년 존 그린우드(John Greenwood)는 드릴을 회전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물레를 수정하여 최초로 치과용 발을 동력으로 한 엔진을 만들었다. 1871년 미국의 치과의사 제임스 모리슨(James Beall Morrison)은 좌식 치과를 가능하게 한 조절 가능한 의자와 페달을 밟으면 회전하는 드릴을 만들어 더욱 효과적인 수술을 가능케 했다. 여담으로 제임스 모리슨은 솜사탕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5년 조지 그린(George F. Green)은 세계 최초로 전기를 이용하여 회전하는 드릴을 개발했다. 현대에까지 사용하는 치과 드릴의 시초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전기가 들어오는 치과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발로 페달을 밟아 회전시키는 방식의 드릴을 주로 사용했기에 상용화가 되지는 않았다.

 

 1953년 미국 치과의사 로버트 넬슨(Robert Nelson)은 수력을 이용한 수력 터빈 드릴을 개발하여 도입되면서 고속 치과용 드릴이 등장했다. 1957년 현대까지 사용 중인 에어 터빈(air turbine) 방식의 드릴을 존 보든(John Borden)이 개발하게 된다. 에어 터빈 기술을 적용시킨 에어로터 핸드피스(Airotor handpiece)라는 이름의 제품을 도입시켰다. 당시 에어 터빈 드릴은 분당 최대 400,000 회를 회전하는 속도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수술 시 정확성이 향상되고, 제어를 더욱 잘할 수 있게 되었으며, 환자에게 편안함을 더욱 심어줄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카메라가 장착되어 구강 및 치아를 더욱 선명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뜨거운 열기를 견디고 물에도 녹슬지 않도록 개량되어 과거에 비해 감염으로부터 안정성을 향상했다.

 

 에어 터빈 드릴은 현재까지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레이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드릴을 대신하여 의료용 레이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연구 중에 있다. 드릴에 비해 더욱 신속하게 수술을 끝낼 수 있고, 고통도 줄일 수 있으며, 드릴이 회전하는 소리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치과에 대한 공포감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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